"안녕, 이방인."

  웨이리가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축축한 두피를 수건으로 문지르면서 울리는 눈앞의 광경을 받아들이려 애썼다. 빳빳하게 다려진 새하얀 호텔 이불 위에, 성탄전야의 선물 상자처럼 웨이리가 누워 있었다. 휴양이라도 온 듯 다리를 꼬아 뻗고 두 팔은 뒤통수를 받치고서. 트윈 룸, 한 사람당 두 개씩 할당되는 푹신한 베개 네 개가 등허리 아래에 탐욕스럽게 겹쳐져 있었다. 씻는 동안 문밖에서 무언가 둔중한 소리가 들려온다 싶더니 그새 따로 떨어진 침대를 밀어 나란히 붙여둔 것이다.

  "무슨 짓이에요?" 울리가 묻는다. 타박하는 투는 아니고,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던전 파훼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탓이다.

  "우리 룸메이트예요!"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대답한다. 거짓말이었다. 로비에서 키를 나눠 가질 때 그들의 짝은 서로가 아니었다. 꼬임에 넘어가 피로한 몸을 이끌고 방을 교환하러 나섰을 다른 대원을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 역시 숱한 장난 중 한 가지에 불과하므로, 웨이리의 표정은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다. 아마도. 적어도 저 둔한 남자가 보기에는 그럴 것이다.

  울리는 어깨를 으쓱이고 젖은 수건을 의자에 걸쳐 두었다. 아드레날린의 폭발적인 분출 뒤에는 허기가 잇따랐다. 지금까지 울리는 차이니즈 레스토랑의 누들 박스 여섯 개를 한자리에서 비운 기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홍 롱 팰리스가 아직 — 그 확연한 모순에도 불구하고 — 극동에까지 세력을 확장하지는 못한 터라, 오늘 밤 주린 배를 채울 음식은 달착지근한 치킨을 얹은 차우면이 될 수는 없었다.

  룸서비스를 시킬 요량으로 협탁의 메뉴판을 뒤적이는데, 거미처럼 더듬거리며 다가온 손가락이 수화기를 덮고 버텼다.

  "햄버거라도 시켜 줘요?"

  울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종잇장을 휙휙 넘겨 메뉴가 영문으로만 적힌 구간을 찾아냈다.

  "아뇨. 뭘 먹고 싶은 기분이 아니에요."

  그제야 그가 메뉴판의 글자에서 눈을 떼고 돌아보았다. 웨이리는 모로 누워 시선을 받아냈다. 맞힐 자신도 의향도 없으면서 멀뚱히 의중을 가늠하는 새파란 눈. 침대맡 내장형 조명의 어스름한 빛이 날렵한 몸의 윤곽을 밝혔다. 소년이 무심히 손등으로 뺨을 문질렀다. 그러나 손짓에 담긴 의도는 명확했고, 아니나 다를까 남자는 멍청하게 또 고분고분하게 보란 듯이 발치에 놓인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긁혔네요." 왜 의료팀을 찾아가지 않았느냐는 잔소리는 하지 않았다. 울리는 그의 상사도 보호자도 아니었다. 가끔 나이 터울이 있는 동생이 생긴 듯한 기분이 들기는 했으나 그가 바라던 형태로는 아니었다. 설교를 원했다면 웨이리는 옆 방의 신부님을 찾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밤처럼 웨이리가 놀이 상대를 원한다면, 글쎄, 그는 바트의 밀하우스 정도는 되어줄 용의가 있었다. 물론 기분이 좋을 때의 얘기다.

  웨이리는 수화기에서 손을 떼고, 눈만 굴려 울리를 쳐다보았다. "메이휘가…."




  한때의 악동답게 메이휘의 손은 매섭다. 얇은 입술을 비집고 흰소리가 튀어나와 그녀의 화에 불을 지피기 전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내리친다. 무방비했기 때문에, 혹은 그가 원했으므로, 웨이리의 얼굴이 비스듬히 돌아가고 그래서 날카롭게 벼려진 새빨간 손톱이 기어코 살갗에 자국을 남기고 만다.

  "…너, 다시는 그러지 마."

  그녀가 매혹적인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속삭였다.

  뺨에 화끈하게 열이 오르는 것을 음미하며, 웨이리는 되물었다. "내가 당신 말을 들어야 할 이유가 있어요?"

  크고 작은 사이렌 소리가 사방에서 요란하게 울려대고, 이 땅의 모어와 마하에서 파견한 인력의 공용어가 어지럽게 섞여 들려왔다. 들것을 든 한 무리의 청년들이 그들 곁을 스쳐 지나갔다. 홀로 된 어린아이 한 명이 재 묻은 눈두덩을 문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치코는 그 모든 혼돈을 고스란히 옮기는 대신 그들에게 필요한 정보만을 선별하여 출력했다. 웨이리는 인공지능의 번역 없이도 그 애의 눈물 섞인 비명을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연민에 가까운 감정을 느낄 뻔했다고도. 그러나 찰나에 불과했다. 미처 해소되지 못한 이물감처럼 웨이리는 다음 단계에, 카타르시스에 도달하지 못하고 다시 주의를 여자에게로 돌린다. 그즈음 세 줄로 난 흉에 피가 방울방울 맺혔다. 웨이리도 메이휘도, 어째서인지 붉게 얼룩진 뺨을 그대로 방치했다.

  메이휘는 부연하지 않고 돌아섰다. 제 몫의 담요를 어느 노인에게 넘기고 저벅저벅 걸어 현장을 벗어났다. 아슬아슬한 구두를 신고서도 늘 — 간혹 그녀가 비틀거리기를 '선택할 때'를 제외하고 — 균형 잡힌 걸음걸이, 미끈한 팔뚝과 종아리, 한낮의 빛까지 삼키는 검붉은 눈에 웨이리는 혹하지 않았다. 그런 조각들은 흔하고 따분했고, 드럭스토어 가판대에서 아무 잡지나 주워 펼쳐도 가득했다. 그는 다만 재능을 잃은 여류 가수의 노랫소리에 천착했다. 듣는 이를 몸부림치게 만들다 끝내 파괴하고 만다는 그 목소리. 얼마나 끔찍하길래 밀랍 귀마개로도 모자라 거대한 돔을 만들어 아군을 가두고 나서야 입을 여는 걸까?

  웨이리는 명령을 어겼다. 대열에서 벗어나 메이휘가 이끄는 2팀의 전황을 살피러 갔다. 자리를 이탈함으로써 그의 구역에 발생할 전력 손실, 그에 따른 피해, 이후 작성해야 할 경위서와 유족에게 고소라도 당할 경우 로페즈 팀장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 할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2팀은 최대한 많은 크리처를 그들 진영으로 유인해 몰살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돔 안에 들어오지 못한 아군을 공격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타이주는 너무 멀리 있었고 그녀의 노래는 희미했다. 웨이리는 홀린 듯이 그녀를 향해 날았다. 날개가 녹아가고 있는 줄도 모르고, 뜨거운 촛농이 흘러 마녀의 잠을 깨우리라고는 한 치 앞도 예상하지 못하고서. 그리고 신을 의심한 모든 신화 속의 인간들과 같이 발각되고야 만 것이다.

  웨이리는 타이주의 분노를 감지하고 황급히 내뺐으나 이미 들킨 뒤였다.

  맹세컨대 그는 그렇게 미움을 사도 좋았다. 그런 방식으로 격렬해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불복종하며 문제를 일으킬 생각이었다. 그러나 여자의 분노는 잔혹하고 냉철한 구석이 있어서, 복수를 되뇌는 대신 그의 존재를 철처히 무시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그녀의 앞에서 투명해지고 싶지 않다면 용서를 구해야 했다.

  웨이리는 전투가 종료된 직후에는 좀처럼 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 그는 한 번 더 새에게 몸을 내맡기고 이름 모를 도시의 창공을 날았다. 붉고 검은 여자는 금세 눈에 띄었다. 용케 무너지지 않은 어느 건물의 옥상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새는 고도를 낮춰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메이휘가 담뱃재를 털며 새의 수은 같이 반질반질한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웨이리, 너… 비겁하구나."

  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은 목덜미에 날카로운 부리를 파묻고 조르듯 문질렀다. 감촉이 차가워 메이휘는 조금 떨었다. 새는 영리하게도 — 아, 타이주는 그것이 본질적으로 짐승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고는 했다, 어쩌면 의도적으로 — 머리카락 사이에 감춰진 지퍼를 물고 아래로 힘주어 당겼다. 피부에 밀착했던 얇은 옷이 한 꺼풀 벗겨졌다. 인간의 윤리를 의식한 새는 양 날개를 펼쳐 여자를 위한 그늘을 드리운다. 앞으로 감싸 안으면 바닥을 디딘 희고 가는 발목을 제외하고는 드러난 나신을 감쪽같이 숨기는 가림막이 만들어졌다.

  알몸의 그녀가 팔을 벌렸다. 세게 껴안아달라는 듯이. 새는 희뿌연 눈을 뒤룩거리다 품을 파고들었다. 매끄러운 깃털이 촘촘히 박힌 목을 두 팔이 단단히 감쌌다. 날카로운 발톱이 여자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금속과도 같은 갈퀴가 피부를 파고들며 자국을 남겼다. “아!” 아픈 줄도 모르고 그녀가 탄성을 내질렀다. 발끝에서 애처롭게 달랑거리던 하이힐이 차례로 툭 떨어졌다.

  중력은 이 불온한 결합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공중에 떠오른 새가 무게중심을 두는 대로 메이휘의 몸이 조금씩 기울었다. 그녀는 새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는다. 부드러운 가슴에, 세례 요한의 머리처럼, 또는 정복자들이 무참히 짓밟은 동양의 어느 사원, 참수당한 부처의 조각상처럼 그것을 기대어 놓고. 이 구도는 다소 우스운데 이종 간의 삿된 관계여서가 아니라 영영 고향이 될 리 없는 이역만리 뉴욕 본부 개인실의 푹신한 베개 안에는 어느 이름 없는 조류의 깃털이 한가득 들어 있을 터이기 때문이었다.

  새가 풍만한 가슴골에 만족스럽게 이마를 비벼댈 때 그것의 부리가 덩달아 움직이며 연약한 가죽에 무심히 상처를 남기고, 배꼽 위로 가느다란 선이 하나둘 늘어갈수록 타이주는 기이한 고양감에 몸을 뒤틀었다.

  마하 팀이 정식으로 발족하기에 앞서 대원들을 선발한 닥터 캄의 연구에 의하면 새의 크기와 속도는 경비행기에 준하고 방어력은 경장갑차에 맞먹었다. 그렇다, 군용 운송 수단에 버금가는, 국제재난전략기구 자료실에 보관된 보고서에 기록된 대로 ‘그 종의 유일한 개체’에게도 성기가 있었다. 진화론자들과 창조론자들은 각기 그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까? 그렇다면 그녀의 역할은 무균실에 감금된 괴물 소년을 상대하러 보내진 릴리트인 것일까? 과학자와 신도가 탁상공론을 벌이는 사이 새는 잔뜩 발기한 좆을 여자의 허벅지에 문질렀다. "아, 웨이리, 잠깐, 착하지, 쉿…." 그녀가 흥분을 잠재우려는 시도로 새의 귀에 속삭였으나,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오히려 그것을 부추길 따름이었다. 타이주는 연락도 하지 않고 친구의 집 앞까지 막무가내로 찾아온 버릇없는 어린아이처럼, 전희가 누락된 일방적인 삽입을 견뎌냈다. 처음 들이미는 것은 힘겹다. 그러나 새는 이윽고 발톱으로 여린 살을 마구 할퀴며 자리를 잡고 아랫도리를 흔들어댔다. 새와 여자는 하나의 원형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들처럼 애타게 마찰했다. 새는 이따금 지성의 흔적으로써 뱉어내던 깍깍 울음소리마저 내지 않아 정말로 민첩하고 교활한 야행성의 동물 같았다. 타이주는 입술을 깨물고 움직임을 줄였다. 박자를 맞추기는커녕 균형을 잡기도 어려웠다. 이따금 깍지를 낀 손에 힘이 풀리고 받쳐주는 벽도 침대도 없어 허리가 뒤로 꺾이면 새가 날개를 펄럭여 아슬아슬하게 등을 받아주었다. 고통은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쾌락이다. 이것은 저주다. 타이주는 직감한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이 보름달이 뜬 밤, 꽃잎을 띄운 대야와 깨끗이 닦은 거울에 비치는 순결한 소녀의 것과는 오래전에 길을 달리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금수와의 성교, 난장판이 된 도시에서 슬픔과 절망을 환각제 삼아 벌이는 이종교배 행위는 제일 전능한 신도 사하지 못할 죄임을, 그리고 이제 무엇이든 돌이키기에는 너무나 늦어버리고 말았음을 깨달으면서, 그녀는 절정에 이른다.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채 지상에 닿기도 전, 지면에서 1피트가량 떠 있는 공중에서 새는 성급하게 소년으로 변했다. 쿵 소리를 내며 연인 아닌 한 쌍의 소년과 여인이 다시 중력의 영향권으로 복귀했다. 허물처럼 바닥에 널브러진 코트와 원피스 위에 타이주가 드러누워 숨을 몰아쉬었다. 웨이리는 여자의 우윳빛 나신을 껴안고 그녀의 얼굴에 그녀의 손으로 흉 진 제 볼을 비볐다. 발갛게 부푼 여인의 허벅지 사이가 쓰라렸다. 소금기 밴 눈물이 닿은 세 겹의 상처도 공평하게 따끔거렸다.




  그러나 그 모든 걸 울리 모건스턴에게 고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녀는 날 미워해요." 웨이리가 말한다. 놀랍게도 이것은 부분적으로 진실이다.

  예상대로 남자는 위로에 서툴렀다. "꼭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소년의 얼굴이 드물게 침울해서, 전직 군인은 작전 지시도 받지 못하고 신생아실에 들이밀어진 기분으로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까마귀의 보들보들한 가슴털만큼은 아니지만, 윤기가 도는 어두운 먹색 머리카락은 기분 좋게 찰랑거리며 손가락 사이에서 흩어졌다. 오른손은 여전히 메뉴판을 붙들고 있었으므로 — 소년은 코웃음을 쳤다. '미안하지만 울리, 당신 뜻대로는 안 될걸요, 항상 그렇듯이!' — 네 마디가 부족해 어딘지 허전한 쪽이었다. 남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배려할 줄도 모르면서 꼭 저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감이 발달한 웨이리는 울리가 그의 머리칼을 어루만지며 새를 떠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기민하게 알아차리고 그의 손목을 잡아채 끌어당겼다. 꽁무니에 붙은 적군 폭격기의 위치를 일러줄 윙맨은 이 방에 없었다. 기습에 고스란히 노출된 남자는 그대로 침대에 넘어졌다.

  "무슨 짓이에요?" 반복되는 물음. 이번에는 웃음기가 가셨다.

  웨이리는 말없이 벽면을 더듬어 스위치를 눌렀다. 전 세계를 누비며 그랑프리에 참가하다 보면 거기서 거기인 호텔 방의 구조에는 금세 익숙해지기 마련이었다. 웨이리의 우위였다. 틈을 놓치지 않고 그가 울리의 몸통에 올라탔다.

  어둠 속에서 남자가 침을 꼴깍 삼켰다.

  소년이 어리광 부리다 못해 갸륵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울리는 날 미워하지 않죠?"

  암전, 정적. "…아직은요."

  웨이리가 울리의 얼굴 가까이 고개를 숙였다. 머리카락이 눈꺼풀 위로 암막처럼 흩어졌다. 간지러워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그러면 괜찮은 거 아니에요? 난 지금 슬프단 말이에요. 기분 좋게 해줄게요…." 소년은 이제 거의 흥얼거리면서 손을 움직였다. 전차의 신께서 보우하사 과거에도 부러진 적 없었고 지금도 모두 온전히 달려 있는 열 손가락은 전문적으로 운전대를 잡았다는 사람치고 곱상하고 보드라웠다. 가볍게 쥐고 당기자 샤워 가운의 끈이 무력하게 스르르 풀렸다. 아뿔싸. 울리 모건스턴의 실책이었다. 비행의 쾌감에 취해 5성급 호텔의 호사를 누리겠다며 괜히 잠옷 대신 가운을 걸쳐서 이 사달이 벌어진 것이다.

  이제 소년은 검지로 원을 그리며 배꼽 근처를 쓸고 있었다. "아하하!" 아이 같은 발랄한 웃음. "속옷 안 입었어요?"

  남자의 얼굴이 조금 붉어진다. "물기가 마르면 입으려 했다고요." 그가 항변하며 상체를 일으켰지만, 어림도 없다는 듯 웨이리가 어깨를 눌러 눕혔다.

  "상관없어요. 단계가 줄어서 좋아요."

  울적한 기색은 어디로 사라지고 열이 올라 번뜩이는 눈빛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어쩌면 좋담. 아주 약간의 완력만 사용하면, 울리는 판도를 손쉽게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그다음에는? 목덜미를 붙들어 팬티 차림으로 내쫓고 문을 걸어 잠그나?

  그건 아무래도… 정서상 안 좋지 않나?

  웨이리의 상사도 보호자도 아닌 울리는 학부형다운 고민을 하며 머뭇거렸다.

  그 사이 웨이리는 울리의 성기를 한 손으로 주무르다가 미처 곧추서기도 전에 입에 집어넣었다.

  "미쳤어요?" 울리가 벌컥 소리를 질렀다.

  웨이리는 불룩해진 볼을 가리켰다. '지금은 말할 수 없습니다'의 수신호였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흡입력 있는 혀의 움직임이 구강의 좁은 공간으로 울리의 좆을 빨아들였다. 간혹 송곳니가 표면을 긁는 건, 이를테면 애교였다. 그를 타박하기 위하여 입을 열 때마다 단어가 제대로 구성되지 못하고 "허억" 또는 "흐" 따위의 신음으로 무너져 내렸다. 울리 모건스턴의 손가락 8.5개가 허공에서 흐느적거리다 겨우 소년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웨이리는 목젖에 닿을 듯 말 듯 깊숙이 들어간 좆을 빼냈다. 침이 질질 늘어졌고, 이불이 젖었다. 더러워진 방을 직접 치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어린애처럼 신이 났다. 웨이리는 아이스크림을 핥듯이 선단을 핥짝대다 다시 조금 힘을 주어 그것을 손으로 문질렀다.

  기둥을 따라 불거진 혈관을 엄지로 더듬어가며 속도를 높여 흔들어대자 울리가 볼링공처럼 난폭하게 웨이리의 뒤통수를 쥐었다. 그것은 일종의 신호였다. 웨이리가 불평하며 빠져나오기도 전에 귀두 끝에서 줄줄 새던 희멀건 액체가 힘 있게 철퍽 분출되었다. 웨이리는 할렘가의 불량아처럼 고개를 돌리고 체액을 퉤 뱉었다. 정액과 섞인 침이 쓰레기통에 명중했다. 그는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고는 여유롭게 바지를 끌렀다. 그리고 아직 침대 시트 위에 늘어져 헉헉대는 울리의 다리를 한 쪽씩 들어 올렸다. 울리의 눈에 비교적 왜소했던 이 소년은, 놀랍게도 힘이 제법 좋았다.

  "쉬, 쉬…." 개를 어르듯 웨이리가 입술을 오므리고 말했다. 그러나 가르침 받은 적 없는 정글 소년은 울리가 아니라 웨이리 쪽이었고 여름 캠프에서 사춘기 소년 소녀가 서툴게 익힌 것과 다름없는 몸짓은 열락보다는 고통을 선사했다.

  허리 아래에서 남자가 흐느끼고 웨이리는 전율한다. 

  '나는 어딘가 잘못된 인간인 걸까?'

  웨이리는 문득 의문한다. 이마에서 땀이 흘러 속눈썹과 콧망울, 입술산에 고였다가 비처럼 뚝뚝 떨어졌다. 몇 방울은 덜 아문 왼뺨의 상처를 따갑게 스치고 지나간다. 그러나 그깟 아픔은, 일생일대의 유일한 사랑이 그를 거부했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뒷경험은 처음인 게 분명한 남자의 구멍에 조여지는 쾌감에 곧 뒤처지고, 소년은 결국 성찰의 기회를 놓치고야 말았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겠어? 지금 이렇게 즐거운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