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술 과제 (220215)
여름이 끝나기 전이었다. 나는 패러웰 선생의 응접실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쟁에서 한쪽 발목 아래를 잃은 그의 걸음걸이는 언제나 독특한 박자를 따랐다. 한 발을 먼저 내딛으면 당김음처럼 약간은 긴박하고 초조하게 나머지 한 발이 따르는 식이었다. 보통의 보폭을 흉내 내 무심히 들어 넘겨서는 눈치 채기 어려운 차이였다. 하지만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토요일마다 선생에게 피아노 교습을 받아왔고, 선생이 느긋하게 위층의 침실에서 내려오는 동안 계단과 복도의 목재를 타고 따닥따닥 울리는 소리에 누구보다도 익숙해졌다.
창밖으로 여자애 몇 명이 양갈래로 땋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자전거를 몰고 지나갔다. 선반 위의 시계에서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가 지나치게 크게 들려왔다. 패러웰 선생은 날이 갈수록 귀가 어두워졌다. 응접실의 낡은 피아노 역시 음색이 시원찮았다. 선생의 귀가 완전히 기능을 잃는 것과 피아노의 줄이 끊어지는 것 중 무엇이 더 빠를지 궁금했다.
나는 주에 한 번뿐인 교습 시간을 그리 싫어하지 않았다. 돌봐줄 사람 없이 어린 나를 집에 홀로 남겨두고 일하러 나가기가 걱정스러웠던 엄마가 궁여지책으로 맡긴 것이 시작이었지만, 나이가 두 자릿수가 되고서도 그만두지 않은 건 순전히 나의 의지였다. 패러웰 선생은 비틀즈나 엘튼 존의 노래를 가르쳐 주지는 않았으나 사십 분짜리 수업이 끝나고 그가 식은 찻잔과 주전자를 다시 채우러 부엌으로 돌아갔을 때 몰래 건반을 두드리는 것은 허락해 주었다. 허드렛일을 거들면 얼마 안 되는 교습비를 깎아주기도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 집에는 피아노를 둘 수 없었다. 생계는 언제나 빠듯했다. 연습을 전혀 하지 못했으므로 실력이 느는 속도는 무척 더뎠다. 나의 연주는 유려하지도, 섬세하지도 않았다. 나는 악보를 읽고 음표에 맞춰 건반을 두드릴 수는 있었지만 영영 그 행위로 누군가를 울리지는 못할 것이었다.
"중요한 건," 응접실 입구에 나타난 패러웰 선생이 말했다. "꾸준함이란다."
"중요한 건 선생님이 넘어지지 않고 아래층까지 오는 거죠."
나는 선생이 곁에 앉을 수 있도록 자세를 고쳤다. 그가 면보를 씌운 피아노 위에서 돋보기 안경을 집어 콧등에 걸치고 주름진 손으로 악보를 넘겼다.
다음주면 나는 런던으로 떠나게 되어 있었다.
다이애건 앨리의 수상하고 혼란스러운 골목에 나와 동행한 건 엄마가 아닌 낯선 친척이었다. 그녀는 말수가 무척 적었고, 어떤 가게에 들어가든 나의 의사를 묻는 일 없이 종업원을 불러 곧장 물건을 구입했다. 심지어는 교복점에서도 어떻게 알았는지 미리 내 치수를 적어와 내밀었다. 이맘때 호그와트 입학생들의 준비물은 대체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나와 눈이라도 마주친 건 지팡이 가게의 노인뿐이었다. 그는 내가 매대 가까이로 다가가자 덜그럭대는 상자에서 나무 막대 하나를 꺼내더니 그것이 층층나무와 벨라의 머리카락이라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나는 지팡이를 받아들었다. 그것은…. 그것은 고향에서 나와 친구들이 나무 둥치를 긁거나 민달팽이를 얹어 휘둘러대던 나뭇가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나의 기대와 달리 기묘했다. 마술적magical이었다는 말은 쓰고 싶지 않지만, 그게 아니라면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지팡이에 유별한 애착을 갖지 않고자 나는 그것을 곧장 짐가방에 쑤셔 넣고 입학하는 날까지 쳐다보지 않았다.
입학통지서에 설명된 호그와트는 마법의 자질을 타고난 아이들을 위한 학교였다. 마법의 모자는 후플푸프가 공정하고 성실한 학생들의 기숙사라고 노래했다. 층층나무 지팡이는 영리하고 흥미로운 마법사를 주인으로 삼는다고 했다. 나는 그 단어들 중 어떠한 것도 나를 묘사한다고 느끼지 못했다. 마법은 불친절하고 곤혹스러웠으며, 무례하게도 나를 꿰뚫어보는 척했다.
수업 시간에는 키가 큰 동급생들의 뒤에 숨어 교재에 얼굴을 파묻고 졸거나 딴청을 피웠다. 그러나 비행 수업만큼은 내뺄 수가 없었다. 후치 부인은 축구 클럽의 코치처럼 냉철하고 무심한 눈빛으로 우리를 훑어보고는 빗자루를 집어 들게 했다. 바닥에 얌전히 누워 있던 빗자루가 단번에 손으로 날아와 감길 때 답지 않게 들뜨지 않았다고는 하지 않겠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다리 사이에 끼우고 땅을 박찼을 때, 빗자루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사방에서 '위로!'를 외치며 발을 구르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면 민망함에 얼굴이 빨개졌을 것이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지면으로부터 두 뼘쯤을 위태롭게 떠올랐다가 휘청이며 머리부터 곧장 곤두박질쳤다. 나는 땅바닥에 무릎과 뺨을 처박고서 신음했다. 아래에서 뭉개진 흙과 잔디가 축축했다.
더 이상 패러웰 선생의 피아노 교실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공교롭게도 나의 토요일 오전은 이제 온전히 비어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거금을 손에 쥔 졸부처럼 어쩔 줄을 몰랐다. 졸음은 일찌감치 나를 떠났고 아직 새벽이슬이 미처 걷히지 않은 시간이었다. 옆에서 잠든 친구들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침상을 빠져나왔다. 복도를 반쯤 벗어나고 나서야 지팡이를 간밤 베개 아래 쑤셔 넣은 채로 내버려두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돌아가지 않았다.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을?
명확한 답을 찾는 대신 나는 창고의 빗장을 풀고 빗자루 하나를 꺼냈다.
일반 마법 과제 (220219)
잘 알지도, 잘하지도 못하는 일을 왜 해야만 하는 걸까? 리오는 탁자 위에 놓인 저학년용 표준 마법서와 실습용 깃털을 노려보았다. 흰 깃털은 낮의 수업 시간에 사용되었던 얼룩덜룩한 타조 깃털과는 달리 훨씬 작아 가벼운 움직임에도 쉽게 나풀거렸다. 이제는 후플푸프 기숙사의 명물이 된 샌드백 대용 베개에서 뽑아 온 탓이었다. 일일 조교로 임한 아틀라스는 노골적으로 그를 배려하려는 심산인 듯했고, 리오는 그것이 제법 불쾌했으나 더는 따지고 들 여력도 없었다.
도서관에서부터 힘겹게 이고 온 책과 양피지를 소파 한쪽에 산더미처럼 쌓아둔 채 아틀라스가 손바닥을 짝 부딪쳤다.
"그럼 이제 연습을 시작해볼까?"
"그러든가."
"연습을 하려면 지팡이를 꺼내야지, 리오."
리오는 암석을 캐는 노역을 하는 죄수처럼 미적미적 망토 안주머니에서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아틀라스는 놀라우리만치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었다. 만약 입장이 바뀌었다면, 리오는 가르침을 받으러 온 주제에 태도가 불온하다며 꿀밤을 먹여 일찌감치 분란을 일으켰을 것이다.
아틀라스는 먼저 시범을 한 차례 보이고, 수업 때보다 훨씬 능숙하고 우아하게 주문을 성공시킨 다음 리오에게 시도할 것을 권했다. 일반 마법 수업이 끝난 뒤로 학교 곳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복습하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에 주문을 읊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콧김에도 흩날릴 법한 깃털은 리오의 지팡이 앞에서는 오히려 요지부동이었다.
"내 생각에 넌 일부러 그러는 거야."
한참을 지켜본 뒤 아틀라스가 결론을 내렸다.
"뭐를?"
시치미를 떼자 검푸른 눈동자가 그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아틀라스는 더 구체적으로, 리오가 숨기고자 하는 마음을 꼬집어 말할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그 결정에 리오는 조금은 고마움을 느꼈다.
"빗자루를 탈 때도 말해줬었지? 제일 중요한 건 날겠다는 마음가짐이라고. 시시하다거나, 재미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깃털이 떠오르는 모습을 상상해 봐. 그리고 손목을 틀면서 부드럽게 오른쪽으로 들어올렸다가, 사선으로 재빠르게 그으면 돼!"
'휙 하고 탁'하면서 주문을 정확히 발음하면 된다던 플리트윅 교수의 강의에 비해 아틀라스의 설명은 훨씬 이해하기 쉬웠다.
'그러니까 나이키의 로고 같은 거군.'
리오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이 깨달음을 과연 몇 명과 공유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와 함께 축구화를 신고 잔디밭을 달리던 소년들은 이제 결코 그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기대가 배반당하는 일은 언제나 무섭다.
리오는 눈을 질끈 감고 지팡이를 휘둘렀다.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무언가 부드럽고 가벼운 것이 손등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허니 듀크 (220228)
아틀라스가 과제를 마저 끝내기 위해 다시 양피지 위로 고개를 기울이면, 리오는 등 뒤에서 눈만 데굴데굴 굴린다. 교차하는 복잡한 심경. 동떨어져 여름을 보낸 친구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심상치 않지만 리오는 그것을 혀 끝의 설탕과자처럼 조심스럽게 다룰 만큼 세심한 인간이 못 되었다. 그에게 여름은 한 뼘이나 자라 발목이 훤히 보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으나 해답을 갖고 있는 어른인 척하기에는 지나치게 짧았다. 몸에 맞지 않는 상급생 노릇도 어영부영 닥치는 대로 해치우고 있는 와중에 엊그제까지 어깨를 맞대며 우스갯소리를 하던 친구가 유리 위를 걷는 중인 것처럼 돌연 날을 세우는 이유를 파악할 여유는 없는 것이다.
차라리 아예 눈치를 채지 못했다면 좋았으련만.
리오는 고민한다.
아틀라스의 깃펜은 여전히 쉼없이 사각거리고, 그의 뒷모습은 말이 없다.
결국 빈 백에서 기듯이 내려와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아틀라스는 이미 참고를 마치고 덮어둔 <표준 마법서>를 미적미적 제 앞으로 당겨 펼친다. 상담은 여자애들의 몫으로 미뤄둘 것이다. 혹은 조나 메이브, 래번클로의 프랜시스 같은 상냥한 녀석들도 이런 면으로는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다만 조용히 과제를 시작한다. 서두르면 내일모레로 예정된 호그스미드 방문 전에 보고서를 제출할 수 있고, 그는 학교에 남을 핑계를 잃을 것이다. 어쩔 도리가 없는 척 외출해 약간의 돈을 쓰면 아틀라스의 기분도 나아질 터였다.
허니 듀크 같은 데서 단 걸 좀 사 먹이면 되겠지.
어차피 갈레온이라는 거, 졸업하면 쓸 일도 없는걸.
그런 태평한 생각이나 하면서 말이다.
오블리비아테 (220316)
리오 카디널은 반사적으로 이맛살을 찌푸린다. 뺨은 젖어 축축하고, 저녁 시간이 가까워서인지 허기와 비슷한 감각이 느껴진다. 손끝에는 어디선가 긁혔는지 작은 상처가 나 있다. 이윽고 깨닫는다. '세드릭 디고리가 죽었어. 그래서 슬픈 거야.'
손등으로 뺨을 훔치는 그를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 아틀라스 반크로프트다. 리오는 수치심과 당혹감을 감추며 눈꺼풀을 재빠르게 깜빡여 눈물을 말린다.
"너랑은 도무지 친해질 기회가 없었네."
상대방은 무표정하게 그를 지켜본다. 불필요한 말, 예컨대 누구도 묻지 않은 질문에 대한 오답을 뱉어낸 것처럼 찜찜한 기분이 드는데도 발화를 멈출 수가 없다. 이정표를 바로 곁에 두고 안개 속을 헤매고 있는 듯 막막하고 아득한 감각이 그를 감싼다. 그는…….
그는 최초로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를 성공시켰을 때 깃털이 떠올라 그의 손등에 내려앉던 감촉을, 눈밭을 가로질러 날아와 뺨에 달라붙기 전 민달팽이 젤리가 가속하던 모습을, 김 서린 욕실 바닥을, 인류가 달의 표면에 발자국을 찍어 남긴 이래로 수없이 되풀이되었던 명언을 잘난 체하며 읊어주었던 대상을 잊었다. 그는 연회장의 깃발과 휘장이 노랗게 물들고 기숙사 우승컵이 고학년으로부터 전달되어 왔을 때 건너편에 앉아 있던 양 갈래 머리의 소년을 잊었다. 긴 식탁을 두드리며 교장에게 반항하는 노래를 지어 부르던 일을 잊었다. 그는 그들이 2학년이 되자마자 퀴디치 경기장으로 나가 첫 정식 입단 시험을 나란히 치렀던 것, 자신은 곧장 추격꾼으로 발탁되었으나 아틀라스는 3년을 내리 고배를 마시고 더는 지원하지 않게 된 것, 지하의 기숙사실에서 7층 꼭대기의 아지트까지 함께 숨이 차도록 계단을 오르내렸던 것, 어느 날 갑자기 침대 아래에 숨겨두었던 잡지들이 모조리 자취를 감추었던 것, 그 책들의 행방이 아틀라스에 의해 가장 부끄러운 방식으로 드러났던 것, 그들이 주고받았던 편지, 농담들, 호의와 친절, 사소한 장난과 그로 말미암은 말다툼, 유령 교수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배경 음악처럼 흐르던 교실에서 오가던 눈짓을 모두 잊었다.
그는 아틀라스 반크로프트를 잊었다.
이제 리오 카디널은 눈앞의 소녀를 내려다본다.
7년 전, 호그와트행 급행열차에서 간식을 몸집만큼이나 한아름 안고 힘겹게 걸어가던 그 애를. 아틀라스는 여전히 그다지 자라지 않은 것 같다. 리오는 그녀에게 건넬 말이 이다지도 상투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곤혹스러워하며 내뱉는다.
"그러니까 내 말은… 졸업 축하한다."
이별의 시간이다.
살아 있으라! (220318)
그들은 지루했고 화가 나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데 그 이상의 계기는 필요하지 않다.
서로를 향한 불신. "이런 무너져 가는 모텔에서 자라고? 네가 숙박비로 받은 갈레온을 빼돌린 건 아니고? 듣기로는 마하비드야 여사의 그린고츠 금고에 니플러가 들었다던데."
몰이해. "어떻게 아틀라스 반크로프트를 기억하지 못할 수 있어?"
차곡차곡 쌓인 불만. "나 혼자서도 이 따위 임무는 해낼 수 있었어." "웃기지 마, 리오 카디널. 네 지팡이가 얼간이처럼 주문을 뒷구멍으로 쏘아댄다는 걸 내가 모를 것 같아?"
그리고 입맞춤. "젠장."
그 다음으로 이어진 일련의 행위가 흐릿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테지만, 관계에 알코올과 약물은 일절 연루되지 않았고 그들의 정신은 무척이나 후회스럽게도 그보다 또렷할 수 없었다.
해가 뜨고 있었다. 그는 잠든 마하라자를 두고 기묘한 기분에 휩싸여 방을 나섰다. 로비라고 부를 것도 없는 좁은 여관의 1층은 황량했고 접수대 뒤에서 중년의 여주인이 꾸벅이며 졸고 있었다. 리오는 접수대를 두드려 그녀를 깨웠다. 캐비닛에서 담배와 신문을 꺼내고 지폐를 건네받는 그녀는 잠에 절어 있지 않은 상태로도 리오를 알아보지 못할 듯했다.
모텔 주인이 틀어둔 라디오에서는 그날의 일기예보가 흘러 나왔다. 리오는 그것을 가져가 마법 세계의 레지스탕스들이 사용하는 주파수에 맞춰 볼 수 있을지 가늠하다가, 삶에 찌든 여인에게 한 줌의 자비를 베풀기로 했다. 애초에 그는 순진한 머글들을 마구잡이로 괴롭히기 위해 이곳에 오지 않았다. 그는 누구와는 달리 그런 행위로부터 즐거움을 얻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무리 궁리해도 특정한 누군가를 명확히 짚어낼 수는 없었으나, 쉬이 떠오르지 않는 그 이름은 어차피 말포이 저택에서 스쳐간 비열한 인간 군상에 속해 있을 것이다.
사색은 방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신문을 펼쳐 봄으로써 끝났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 연회색 종이의 모퉁이가 구겨졌다. 방문 앞에 이르러서야 열쇠를 챙겨 나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으나,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리오는 잘 알고 있었다. "알로호모라." 자물쇠가 이상하리만치 익숙한 찰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리오는 신문을 반으로 접어 헤드라인이 보이지 않도록 던져 내려놓았다. 담배를 꺼내 물고 돌아서자 어느새 일어난 마하라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돌연 이불로 몸을 가리고 수줍음을 타는 척하는 유형의 여인은 아니었다. 베개에 한쪽 팔을 괴어 머리를 받친 채 마하라자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리오는 알아듣지 못한 척 눈썹을 추켜올렸다.
"너 담배도 피웠냐?"
"지금 장난해?"
먹구름이 낀 듯한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약간의 경멸이 담긴 듯한 표정이었고, 리오는 마하라자로부터 그러한 시선을 받는 데 익숙했다. 오히려 몇 시간 전 그녀가 교차하는 열락과 고통에 젖어 신음을 흘려보낼 때보다 훨씬 마음이 놓였다.
마하라자가 입모양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탁자에서 담뱃갑이 휙 날아가 그녀의 손에 안착했다. 그녀에게는 라이터조차 필요 없었다. 그것이 진정 마법사다운 방식이었으므로.
그와 반대로 리오 카디널은 여전히 일반 마법에서는 낙제생이었다. 한때 한 학년 아래 후배들과 나란히 앉아 어떻게든 책장을 넘기던 시절도 있었으나 지금은 무용했다. 그의 곁에서 함께 교재를 읽던 소년은 영웅의 곁에서 죽었다. 해리 포터는 그를 지키지 못했다. 이제 어른이 된 리오가 사용하는 마법 주문은 아씨오와 루모스, 녹스 따위의 가장 기초적인 것 외에는 폭발을 일으키는 마법, 상대를 마비시키거나 경련을 일으키는 마법, 고문하고 정신을 휘젓고 가장 내밀한 비밀을 자백하게 만들고 비명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공간을 방음 처리하는 마법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가끔은 오발됐다. 그래서 그는 마하라자가 다디단 니코틴의 첫 모금을 빨아들이고 다소 조급하게 내뱉은 뒤 필터를 다시 입에 무는 동안 애꿎은 연기만 맡으며 침대맡의 서랍을 열었다. 싸구려 모텔의 기본 제공 용품으로는 표지가 반질반질하게 닳은 성경, 면봉과 휴지, 이전 투숙객이 개봉하여 사용한 뒤 새것으로 바꾸지 않은 게 분명한 성냥갑, 그리고 콘돔이 있었다. 그는 짧은 고민 끝에 성냥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마하라자는 그새 다 닳은 꽁초를 등 뒤의 벽에 문질러 끄고는 바닥으로 던졌다.
"배에 상처가 있었네. 어제는 어두워서 몰랐는데."
리오는 침대 등받이에 기대어 앉아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흉터는 마치 협곡처럼 왼쪽 옆구리로부터 배꼽 위까지 길고 좁은 V자 형태로 나 있었다. 한 계절 전에 가담했던 전투의 흔적이었다. 이미 서너 달이 흘렀는데도 거친 표면에는 여전히 적갈색 빛깔이 돌았고 가장자리가 균일하지 않았다. 머글의 흉기도, 마법사의 지팡이도 그러한 상흔을 남길 수는 없었다.
"머글 병원에라도 가서 드레싱을 받은 거야? 의사의 실력이 처참했나 봐. 차라리 나한테 찾아오지 그랬어."
"지혈 외에는 굳이 처치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마하라자는 두 사람이 학생이던 당시 리오가 졸업 후에는 성 뭉고가 아닌 성 바톨로뮤를 찾을 것이라고 단언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것은 그의 입버릇과도 같았다. '머글 세계로 돌아갈 거야.' '지팡이를 꺾을 거야.' '너희를 다시 만나지 않을 거야.' '아니, 마법사가 되지 않을 거야.' 그녀는 아무래도 잘못된 쪽으로 그를 비웃어 주겠노라 다짐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음반을 내고 록스타가 되겠다는 꿈이 아니라, 그 자신의 본질을 부정하겠다는 허황된 욕망을 놀려 주었어야 했다.
"설마 '영광의 상처' 운운할 셈은 아니겠지."
물론 그녀는 지금도 충분히 리오 카디널을 조롱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마하라자의 습관적인 비아냥에 리오는 뜻밖의 답을 내놓았다.
"이건 조 길브라이드가 남긴 거야."
그제야 상처가 생긴 정황이 대강 그려졌다. 붉은 눈과 단단한 발톱을 가진 늑대개. 마하라자는 그 개를 그다지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
"아…." 마하라자가 눈두덩을 쓸었다. "그것 참 기분 더럽네."
리오가 옅은 호응의 소리를 내며 그녀의 목덜미로 파고들었다. 마하라자는 그것이 무엇을 향한 동의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설마 조 길브라이드가 발톱 말고도 다른 무언가로 리오를 꿰뚫었을까? 그럴 리는 없었다. 적어도 마하라자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일단은 그의 등에 팔을 둘렀다.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웨일스의 눅눅한 하늘은 오전 10시가 되도록 희끄무레했다. 그들의 사냥감은 아직 덫에 걸려들기 전이었고, 사방이 어두울수록 표식을 띄워 올리기에도 용이했다.
'어울려주지 못할 것도 없지.' 뺨 위로 흘러내리는 붉은 머리카락을 피해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마하라자는 생각했다.
허름한 홑창을 흔들며 바깥에서 불어온 바람에 바닥에 떨어진 신문이 펄럭였다. 마하라자는 초점을 맞추기 위해 눈을 깜빡였지만, 이윽고 리오가 갈라진 자국이 있는 배를 그녀의 허리께에 붙여오는 바람에 주의를 빼앗겼다. 움직이지 않는 사진과 젖어 있지 않은 잉크는 당장의 말초적인 자극보다 그녀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리하여 마하라자가 어떤 죽음을 접하는 건 몇 시간 뒤의 일이었다.
1997년 8월 31일, 그해 여름의 가장 불길했던 마지막 일요일에, 전 세계 모든 신문이 첫 장에 대서특필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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