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 (210906)
눈을 떴을 때, 세상이 뒤집혀 있었다. 막 잠에서 깨 더딘 사고의 흐름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무려 8초가 걸렸다. 귀가 먹먹하고 뒤통수가 얼얼했다. 피가 몰려 화끈거리는 뺨을 느릿느릿 손바닥으로 쓸었다. 목덜미에 닿은 까슬까슬한 것이 방바닥에 깔린 카펫이라는 걸 깨닫고서야 웨이리는 가뿐히 상체를 일으켜 바로 앉았다. 엉망으로 엉킨 머리카락이 위아래로 무력하게 나풀거렸다.
“제발 얌전히 좀 있을 수 없어?”
페이가 문간에 불쑥 나타나 핀잔했다. 추수감사절 이후로 몇 달 만에 만나는 여동생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머그잔을 손에 들고서, 빌딩 숲의 찌는 듯한 더위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삼켰다.
“페이, 너도 알잖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거.”
“내 말은, 노력을 하라는 거지. 내일부터는 팔걸이에 팔을 묶고 자 보든가.”
웨이리는 동생의 말에 중국어인지 영어인지 모를 언어로 웅얼거리고는 화장실로 향했다. 오늘은 드디어 ‘그날’이었고, 여동생과의 말다툼도 그의 기분을 망칠 수는 없었다.
두 다리는 침대를 가로로 가로지르며 뻗고, 상반신만이 중력을 거슬러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자세로 매일 아침 잠에서 깨는 건 웨이리의 지독한 습관이었다. 산만한 성정과 꼭 닮은 잠버릇은 형제들과 방을 공유하던 유년에는 자주 원성을 샀으나 일찌감치 프로로 전향한 십 대 후반부터는 누구도 그에게 간섭하지 않았다. 전문성이란 바로 그런 것이라고 웨이리는 생각했다. 서킷에 나가 할 일만 제대로 하면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자유를 허락받는 것. 그러나 그는 이제 선수가 아니었고, 새 직장에 합격하기 전까지는 동생의 스튜디오에 객식구로 얹혀사는 처지였다. 맙소사! 뉴욕의 물가와 월세란 얼마나 말도 안 되던지. 그 좁은 방도 그나마 집주인의 조카의 사촌의 친구에게 소개받아 합리적인 가격에 계약한 매물이었다(뉴욕에 착륙한 지 이틀 만에 웨이리는 이곳 시민들이 ‘합리적’이라는 단어를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아주 특수한 상황만 아니었다면 여동생의 잔소리를 피해 콘래드나 포시즌스에서 묵었을 것이다. 특수한 상황이란 그가 여태 받았던 연봉 대부분이 ‘홍 롱 팰리스’의 동부 5개 주 및 하와이와 캐나다 남서부 진출을 위한 사업 자금에 묶여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웨이리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오렌지 치킨 레시피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종류였고, 돈이야 조수간만처럼 있다가도 없는 것이니까.
세상을 구한다는 사명감, 그로부터 얻게 될 영예, 안정적인 보수, 혹은 저마다의 사적인 이유로 마하에 합류하기 위해 온 지구에서 사람들이 몰려든 탓에 웨이리의 면접은 7월 셋째 주에 느지막이 잡혀 있었으나 그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이 도시로 날아온 건 6월 마지막 주의 일이었다(많은 이들이 지레짐작하고는 하지만 웨이리는 국토안보부와의 길고 끈질긴 면담 끝에 항공법을 준수하기로 동의하였으므로 이능력이 아닌 델타 항공의 비즈니스석 티켓을 사용해 대륙을 건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물론 메이시스에서 주관하는 독립기념일 행사를 보기 위해서였다. 웨이리가 생각하기에 수요일 자정이든 일요일의 동틀 녘이든 시속 20마일 이상으로 달리는 게 불가능하다는 교통체증의 도시가 지닌 매력적인 면은 단 한 가지였다. 일 년에 딱 두 번, 독립기념일과 새해 전야에 맨해튼의 좁은 하늘을 수놓는 붉고 푸른 빛의 향연.
던전 브레이크 이후의 세계가 현대판 묵시록일지, 혹은 누군가의 말마따나 이미 이 세상은 수백 년 전부터 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아포칼립스 상태였고 던전은 이상기후나 전쟁과 같은 종말의 기수 중 하나에 불과할지 웨이리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만, 그에게 주어진 능력이 날개 달린 동물로 변하는 것이라는 점만큼은 흥미롭게 여겼다. 각성 이전의 재능과 관심사가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주는 게 분명했다. 무지막지한 속도를 내는 레이서이면서 알바트로스가 아닌 까마귀가 된 것이 우연에 불과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예컨대 그는 이십여 개의 그랑프리 중에서도 싱가포르와 아부다비에서의 레이스를 가장 좋아했는데, 이유는 그 두 도시에서는 경기가 야간에 열리기 때문이었다. 서킷을 따라 세워진 조명은 공공재가 아니라 오직 스물네 명의 선수들만을 위한 가로등과 같았고 모든 것이 반짝반짝했다.
시선을 빼앗긴 탓일까? F1 레이서로서의 첫해, 지나치게 들뜬 그는 슬럼프에 빠진 팀에 간만의 승리를 가져다줄 괴물 신인이라는 기대를 배반하고 수천만 달러를 호가하는 레이싱 카를 산산이 조각냈었다. 마지막 랩이었고 우승이 코앞에 있었다. 미처 지시사항을 전달받지 못한 기술자들이 시즌의 끝과 함께 불꽃놀이를 쏘아 올렸다. 연기와 화염이 피어오르는 차체에 갇혀, 다른 레이서들이 피니시 라인을 넘는 동안 지켜본 그 날의 하늘을 잊을 수 없었다. 끊임없이 성냥을 그어 손이 델 때까지 타들어 가는 불꽃을 들여다보는 어린아이처럼.
해가 저물고 한 줌이라도 나은 시야를 확보하려는 구경꾼들로 거리가 분주해질 즈음, 퀸스의 어느 8층짜리 건물 옥상에서 거대한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웨이리는 이스트 강의 수면에 배를 붙이고 낮게 날다 교각을 따라 솟구쳐 올라 브루클린 대교의 기둥 중 하나에 내려앉았다. 누군가가 아이폰으로 촬영하고 있던 동영상 모서리에 그림자 같은 날개가 포착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어둠 속에 몸을 숨긴 덕에 다행히 그를 알아보고 소란을 피우는 행인은 없었다. 그는 단단한 발톱으로 기둥의 모서리를 붙들었다. 매캐하고 알싸한 대도시의 냄새가 섞인 서늘한 바람이 깃을 스치고 지나갔다. 사회자가 10에서부터 거꾸로 숫자를 세는 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남은 시간이 3까지 줄어들었을 즈음, 웨이리는 변신을 해제했다.
얼굴 (210908)
훈련실의 천장을 향해 날아오르면서 웨이리는 한 창백하고 주름진 얼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얼굴의 주인은 벨기에인으로, 직함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은퇴할 때까지 듣지 못했다. 팀의 모두가 그를 우드스톡이라고 불렀다. 짧고 윤기 없는 가느다란 금발이 언제나 하늘을 향해 삐죽빼죽 서 있어 그런 별명이 붙었다. 웨이리는 항상 그게 무척 기발하고 잘 어울리는 별명이라고 생각했다. 유럽인이 구독하는 신문에도 <피너츠>가 실리는 모르겠지만.
그와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피트 인 했을 때 타이어를 바꿔주는 크루도 아니었고, 무전으로 지시를 내리거나 시합 전후로 몸의 상태를 확인해주는 스태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필 본부에서 가장 층고가 높은 훈련실 천장의 조명은 노르스름한 색을 띠었고, 공기 중에서 흐물거리는 먼지 조각 따위가 시야에 들어왔다. 가닥가닥 흩어진 먼지와 노란빛이 이어 그리기처럼 오래 잊고 있었던 얼굴을 연상시켰다. 흰자가 사라진 두 눈을 빠르게 깜빡이자 눈꺼풀 뒤로 그 얼굴의 잔상이 남았다. 그런데 그의 이름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웨이리에게 기억은 체화와 동일했다. 수천, 수만 번의 훈련을 거쳐 몸에 익힌 레이싱 카의 핸들 조작법은 모어의 알파벳보다도 익숙하지만 두 단어로 이루어진 동료의 이름은 고작 서너 해가 지났다고 머릿속에서 말끔히 지워질 수도 있는 것이다. 당장 꽂힌 의문점을 곧장 해결할 수 없다는 건 무척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고작 옛 직장 동료의 이름을 알아내야만 한다는 이유로 실험을 중단할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웨이리는 머릿속으로 그가 알고 있는 불어권 남성 이름을 샅샅이 훑었다. 아르투르? 너무 올드했다. 샤를? 그는 모나코의 보석이고. 세르쥬? 이것은 얼마 전부터 ‘그녀’의 이름이었다.
한번 주의가 흐트러지자 하마터면 상의된 실험 수칙을 잊고 멋대로 움직일 뻔했다. 웨이리는 가까스로 지정된 높이에서 양 날개를 수평하게 펼쳤다. 지상에 나스카 라인처럼 그림자가 드리웠다. 거의 수직으로 고개를 젖히고 있던 울리의 얼굴이 어둠에 잠겼다. “사격을 개시합니다!” 그가 외쳤고, 동시에 안전장치가 풀리며 방아쇠가 당겨지는 소리가 예민해진 청각에 포착되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도 수십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능력명을 ‘일식’과 같은 것으로 지었어도 좋았겠다든지. 혹은 실내에서 거대한 인간-새를 쏘는 게 울리에게는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경험과 비슷했을지. 부친과 사냥에 나가 본 적이 있기는 할지. 사격 당한 충격에 져 잊지 말고 물어봐야겠다고 다짐하는 동안에도 소총의 탄환은 충실하게 공기저항을 뚫고 그에게로 돌진하고 있었다.
‘얀센.’ 날개에 총알이 날아와 박히는 순간 기적처럼 떠올렸다. ‘맞아. 쥘 얀센이었어.’ 경장갑차와 유사한 강도의 깃털은 총알 몇 발을 튕겨냈고, 나머지 몇 발은 깃털에 움푹 팬 자국을 남기며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웨이리는 무심코 날개를 퍼드덕거려 거슬리는 흔적을 털어내고 하강했다.
지상으로부터 약 6피트 지점에서 일찌감치 능력을 해제하고 두 다리로 착지하며, 웨이리는 소리쳤다. “견딜 만해요!”
그러고 보니 총구를 아래로 내리고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울리의 무뚝뚝한 얼굴이 우드스톡을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이 퇴역 군인(자수성가한 중산층 이민자 사업가 가정에서 자란 웨이리는 미군의 직위 체계나 전역 절차에 대해 아는 게 전무했다)의 머리카락은 노랗지도 뻣뻣하지도 않으므로 굳이 따지자면 우드스톡보다는 스누피에 가까운데도 말이다. 그에게 지금 경험한 에피파니에 대해 말해주면 무어라 대꾸할까? 웨이리는 아마 그가 기적이란 총에 맞고도 멀쩡히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이지, 수년 전 함께 일했던 동료의 이름을 무의식에서 건져내는 게 아니라고 답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지극히 논리적인 말이었고, 웨이리가 생각하기에 울리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웨이리는 그 깨달음이 가져다주는 환희를 느긋하게 음미했다. 소총에 맞고도 활짝 웃는 초인 혹은 미친놈으로 보고서에 기록되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정보이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간직할 것이다. 내일, 모레, 어쩌면 다음 주까지도. 여름 휴가로 찾아간 피서지의 해변에서 주워온 매끈하고 반짝거리는 돌멩이를 소중한 보석처럼 침대 맡에 전시해 두듯이.
방학이 끝나면 자갈 위로는 먼지가 쌓이고 단절된 과거에 대한 기억은 곧 휘발되겠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에는 그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뉴욕, 뉴욕 (210912)
때마침 회장에서 경쾌한 재즈가 흘러나왔다. ‘누구더라. 냇 킹 콜? 마일스 데이비스?’ 공교롭게도 건반을 두드리는 연주자는 아시아인이었고, 오늘 밤 연주되는 곡을 누가 썼고 누가 재현하는지는 매우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다. 메이휘를 무게중심 삼아 웨이리는 난간 위로 올라섰다. 메이휘는 반사적으로 두어 발짝 물러섰지만 손을 놓지는 않았고, 쭉 뻗은 두 팔이 구심력을 형성한 덕에 옥스포드의 뒷굽이 아슬아슬하게 모서리에 걸려 착지할 수 있었다. ‘진 켈리처럼.’ 그는 음악에 맞추어 스텝을 밟아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며칠 전 그녀와 나눈 이야기를 떠올렸다. 웨이리는 고개를 휘저어 줄줄이 떠오르는 이름들, 미국인들의 이름들을 잊어버리려 애썼다.
만약 메이휘가 마음을 바꾸고 손을 놓으면, 떨어질까?
한 쌍의 검붉은 눈이 멍하니 그를 쫓았다. 그 눈은 번뜩이지도 깜빡이지도 않았다. 웨이리는 쉽게 겁을 먹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두메이휘를 예측하고 파악하는 데는 줄곧 애를 먹고 있었다.
“메이휘, 여기로 올라와요. 잡아줄게요.”
드레스를 입은 데다, 아마도 확실히 음주했을 여인에게 권할 만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러나 메이휘는 어떤 초인적인 힘으로 3.5피트가량을 도움닫기도 없이 뛰어올랐고 두 사람은 발코니의 가장자리에 서서, 에드워드 노튼과 헬레나 본햄 카터처럼, (그만! 웨이리는 스스로의 뺨을 때리려다 그만 메이휘를 놓칠 뻔했다.) 아니, 그저 쉬웨이리와 두메이휘답게 한밤중의 뉴욕을 내려다보고 있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흩뜨렸다.
“시끄러워.” 한참 후에 메이휘가 내뱉었다.
“시끄럽네요.” 웨이리가 동의했다. “잠들지 않는 도시라고들 하잖아요.” 누군가 길가에 드럼 세트를 꺼내와 두드렸고, 피로한 행인들은 그를 무심히 지나치고, 노란 택시들이 도로변을 따라 서행하며 손님을 낚아챌 기회를 노리고, 막 막이 내린 극장에서 한 무리의 평론가들이 우르르 빠져나오고, 골목마다 쥐들이, 걸인들이, 사업가들과 배우들과 그저 유명하기만 한 유명인들이 비틀거리며 어디론가 걷고 있었다.
“불야성은 그곳에도 있었어.” 메이휘가 속삭였다.
웨이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당신을 타이베이에 데려가 줄 수는 없어요.’
그는 생각한다.
‘그리고 모두가 뉴욕을 사랑해야 할 이유는 없죠.’
웨이리는 한 번에 하나씩, 메이휘와 얽혀 있던 손가락을 펼쳤다. 두 손바닥이 그저 나란히 맞닿아 있기만 하게 되었을 때, 그가 선언했다.
“셋 하면 뛰어요.”
그녀가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을까? 메이휘가 무어라 동의 혹은 거부의 뜻을 중얼거렸을지도 모르지만, 희미한 의사 표시는 곧바로 대도시의 소음에 섞여 사라졌다. 웨이리는 개의치 않고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메이휘의 몸이 서서히 전방으로 기우는 모습을 그는 고요히 지켜보았다. 심장이 난잡하게 쿵쾅거렸다. 뒤따라 날개를 펼치며, 추락하는 여자를 앞질러 가 그녀가 자신의 등에 안착하기를 기다리며, 중력 앞에 공평히 무력한 육체를 받아 부드럽게 비행하면서, 웨이리는 자신이 질투에 사로잡혀 있음을 인정했다. 던전 브레이크 이후 그는 바로 그 가능성을 잃어버렸다. 중심을 잃고 떨어지는 것. 희박한 확률에 몸을 내맡기는 것. 그저 믿고 뛰는 법을.
그래도 오늘 밤 두 사람에게는 졸피뎀과 프로작이 필요 없을 것이다.
우아한 유령 (210914)
자비가 결여된 과학 위에 지어진 이 도시에서도 유령들은 거리를 배회했다. 낭만이 가득한 현상이자 비극의 산물인 관념적인 존재들. 절벽 가장자리에서만 살아 있음을 느끼는 비정상이고 오작동하는 부적응자들. 마하 단위의 속도로 달려도 육신은 분리된 영혼을 따라잡지 못했다. 결핍을 채우고자 정처 없이 부유하다가도 누군가 다가오면 소스라치며 벽 너머의 다락방으로 숨어버리는 숨바꼭질을 반복했다.
웨이리는 이제 눈앞의 여자를 알 것 같기도 했다. 정확히는 그녀가 옛 기억과 현재를 넘나들고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도 한순간 실종되는 방식을. 너무 느리고 너무 따분한 삶에서 유일하게 사랑했던, 철과 고무와 역청으로 이루어진 작은 세계에 머물 자격을 박탈당했을 때도 그는 위로를 원치 않았으나 지금,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저 이방인을 붙들어 놓을 필요는 느꼈다.
한밤중의 비행에 고결함은 없었다. 과거의 흔적 기관을 쓰다듬으며 대도시로부터 사랑할 구석을 찾아내려 애쓰며 구차해지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그녀는 뺨을 적셨고 눈물은 바람에 흩날려 웨이리의 등에 닿기도 전에 증발해 없어졌는데도 두 발로 땅을 딛고서 울었노라 고하는 메이휘에게 웨이리는 일종의 성스러움을 느꼈다. 발화로써는 결코 구현되지 않는 찰나의 경이…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다는 본능적인 깨달음… 신을 믿지 않아도 그 밤에는 누구나 트리니티 교회의 종탑에 내려앉아 20년간 다시 쌓아올린 이 도시의 역사를 반추할 수 있었다.
착각일 뿐이라고 웨이리는 생각한다. 똑같이 심장이 뜯겨 나갔다 한들 마주 보고 앉아 서로의 가슴에 손을 집어넣고 주먹을 쥐었다 펴도 혈류와 박동을 대신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그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태생부터 그랬다. 간밤의 도약은 변화를 일으키기에는 지나치게 짧았다. 희망은 언제나 희미하고 분노는 언제나 분명했다.
"하지만 타이주, 자정을 넘긴 지 한참이 지났고 오늘의 태양은 기어코 마천루를 비집고 떠올랐어요. 나는 간을 쪼아먹는 독수리도 올리브 가지를 입에 문 비둘기도 아니에요. 당신은 살아 있는 따뜻한 피부를 가진 인간이고 더는 멋대로 사라져 버릴 수 없어요. 이제 당신이 대답해야 할 차례예요."
"우리는 닮았나요?"
"이건 저주인가요?"
"여전히 울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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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으로 조금씩 떠오르면서, 웨이리는 클리포드를 떠올렸다. 어쩐지 이 남자를 보면 자꾸 둥글고 선한 만화 캐릭터들을 연상하게 되었는데, 그게 전장에서 손가락을 잃은 창백한 인상의 전직 파일럿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웃음이 나왔다. 아니, 웃으려고 했으나 새의 성대를 거친 목소리는 의미가 불분명한 중저음의 단발적인 울음소리로 변환되었다.
빅 레드 독 클리포드. 웨이리의 할머니는 눈을 깜빡이지 않는 못생긴 인형들과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동물들이 사람의 말을 하는 미국의 아동용 방송을 기괴하다고 여겼지만, 크고 붉은 개만큼은 마음에 들어 했다. 중국식 미신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2시 즈음 학교가 파해 돌아오면 부모님이 간식으로 준비해둔 볶은 땅콩이나 시리얼을 품에 안고 TV 앞에 앉았다. 그러면 2000년대 초 그 시간대의 PBS에서는 꼭 빨간 개가 나왔다. 웨이리는 일주일에 세 번씩 카트 스쿨에 가는 대신 방과 후 활동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업이 모두 끝난 뒤 서로의 집으로 초대해 어울려 놀 만큼 가까운 친구가 없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 또래의 아이들은 대개 겁쟁이인 데다 어른들의 말에 지나치게 구속되었다.
아무튼 클리포드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서. 기억이 나지 않는 이유로 집 한 채만 한 거대한 크기로 자란 클리포드는 그에게 드는 어마어마한 식비나 그가 매일매일 파손하는 공공기물의 배상비는 개의치 않고 그를 사랑해 주는 금발 소녀와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찬찬히 되짚어 보니 그 동화와 지금 그들의 상황 사이에는 그리 뚜렷한 연결고리가 없었다. 미국 공교육을 탓하라지. 웨이리는 생각했다. 어차피 이 나라는 모터스포츠에 충분한 찬양과 경배를 보내지도 않는 몰상식한 국가였다.
그러다 그는 문득 두 사람이 얼마나 멀리 왔는지 깨닫는다. 울리에게 조종간을 맡긴 사이 벌써 맨해튼을 벗어난 것이다.
몸의 지휘권을 이렇게 쉽게 내어주다니, 결코 옳은 판단은 아니었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 그다지 윤리적이지도 않을 것이다.
정말이지 이런 건 비정상적이었다……. 그러나 그가 감히 누구라고 정상과 비정상을 판가름하겠는가?
가을, 뉴욕의 하늘은 드물게 깨끗하고, 산뜻한 바람과 맑은 빛이 정수리로 쏟아져 내리는데, 과연 어느 누가 지상의 잣대를 들이댄단 말인가?
웨이리는 지금의 그로서는 너무나 가볍게 느껴지는 1인분의 무게를 느끼며, 울리가 이끄는 대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